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 라는 말이 있지요이 말이 뜻하는 바가 여럿 있겠지만 이문구에서 가장 처음 와닿는 의미는 역시 로마에 가서 로마 식대로 살면 편하다는 것같습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든 사실 그 나라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가장 쉽게 그나라에 적응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자라온 환경과 몸에 밴 식생할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뉴질랜드에서도 그랬지만 소위 뉴질인들의 사고방식, 키위 방식대로 생각하고 키위식대로 살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곳이 뉴질랜드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한국식의 사고방식과 한국음식을 고집하면 여러가지 불편한 점과 생활하는데 있어서 소요 경비도 몇배로 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서 짜장면 한그릇을 먹으려면 약 14유로를 지불해야 합니다. 한때 1유로가 2000원 넘었던 환율을 감안하면 짜장면 한그릇이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28000 이 되는 셈입니다. 음식점 주인 아저씨의 말대로 유럽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인 물가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짜장면 맛은 한국에서 3천원 뉴질에서 6천원 했던 짜장면 맛과는 비교가 안되게 형편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식의 아침식사 빵과 우유 햄과 베이컨 몇 조각을 먹는다면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아침식사의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유럽이든 그 어느 나라를 가던 그 나라 방식과 유럽식의 생활방식으로 산다면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짜장면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럽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다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비를 아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부분이 있기에 그점을 이야기 해보려는 것이랍니다.
요즘 세계의 경제적인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시아도 그렇고 유럽도 저가 항공이 취항을 많이합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잘하면 나라와 나라 간의 왕래를 할 수 있는 항공료가단돈 2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쏟아집니다. 그것도 편도가 아닌 왕복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왕복 항공편을 싸게 구입하였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부산에서 다른 목적지로 가려 하여도 반드시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그목적지로 출발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그 목적지가 부산 가까이에 있는 경주나 울산이어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왕복표에 대한 설정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목적지가 부산과 가까운 경주 울산임에도 불구하고 왕복항공표가 있다고 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간 다음 그쪽으로 행선지를 향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요?
당연히 부산에서 차편이나 기차편으로 손쉽게 경주나 울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항공 왕복표가 있다는 설정,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설정이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이되고 이러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의 범주안에서 비롯된 의식작용들로 인해나는 내 스스로 설정한 관념의 틀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안을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의 주인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일체 유심조의 진리를 깨우친 자각을 하고도다시금 생각과 사념속을 허우적 거리고 그것들의 테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바로 이러한 출발지의 회귀본능, 즉 왕복표라는 나의 설정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래야 하고 ,저것은 반드시 저래야 한다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고 저러한 일은 당치도 않다.등등나는 출발선상부터 수많은 설정들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고이러한 설정들이 나를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 오게하는 왕복행 코스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뜻 언뜻 자각이 일어나 자각의 중요성을 알고 내 자신의 설정이 빤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다시금 내 자신의 생각이 고집하는 대로 이끌려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설정, 나에 대한 성찰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요나는 설정에 의한 내가 아닌 설정을 만드는 나 입니다.나는 설정에 구속되 있는 내가 아닌그 어떤 설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인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자유입니다.
여기서의 자유는 설정으로 빚어지는 행위와 행동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나의 태생적 자유, 존재적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즉 나의 본질이 자유라는 것입니다.그 어떤 괴로움,즐거움,고통,희열,슬픔.기쁨등의 설정이 있다 하여도나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설정들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성현들의 말에는 이러한 점을 표현한 것들이 있었던 것입니다.고통은 있어도 고통받는 자는 없다. 슬픔은 있어도 슬퍼하는 하는 나는 없다.즉 일시적인 희비애락의 설정들은 있어도 나의 본질은 이러한 것들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말입니다. 왜? 자유라는 나의 태생적 본질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운 가요아니요전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만일 어렵다면 그것은 내가 만든 설정에 나를 가두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난해한 것도 아닙니다.
나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부족할 뿐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간다는 표현을 씁니다.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다. 원래 온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처음에 왕복표을 끊었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어남과 죽음은 바로 왕복행 티켓이고 인생은 바로 그러한 과정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무 왕복행을 고집해서 그렇지 죽음 ,돌아감은 우리의 필연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죽음 즉 돌아감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왕복행을 고집하지 않으면 구태여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조차도 나의 왕복설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어지네요..여러분들 오늘 제가 하고자 이야기의 핵심 다 아시지요.
늘 그렇듯이 자각,자각,자각 입니다.